"사람과 사람이 만나 위로를 얻고, 무너진 관계가 예술을 통해 다시 이어집니다. 김포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 사회적기업 공감두예술교육센터의 천미현 대표를 만났습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길러주는 예술의 기적에 대한 진솔한 문답을 전합니다."
[1단계: 나를 드러내기 - 성향과 환경]
Q1. 자신을 하나의 '색깔'이나 '자연'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며, 그것이 본인이 하는 일이나 주변 환경과 어떻게 닮아있나요?
저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관계의 회복과 성장을 만들어가는 사회적기업 ‘공감두예술교육센터’ 대표 천미현입니다.
저를 표현하는 색은 초록이며, 자연으로는 숲입니다. 저는 추자도라는 작은 섬에서 자연을 벗 삼아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연은 제게 가장 편안한 쉼터였고, 지금도 인간을 가장 깊이 치유하는 존재는 자연이라고 믿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작 중심 표현예술치유를 공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다리를 올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내 삶의 최고의 주치의는 나 자신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의 경험은 나와 대상을 온전히 믿게 되는 힘이 되었습니다. 숲 안의 생명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면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명을 이어가듯, 사람도 스스로를 지켜낼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각자 안에 존재하는 그 힘을 발견하도록 곁에서 함께 걷는 과정입니다.
Q2. 지금 활동하고 계신 주요 무대(김포 지역 등)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나, 그곳에 얽힌 특별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학교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세상을 배우며 함께 성장합니다.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배우며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사진 제공 : 공감두예술교육센터 천미현 대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선택적 함묵증이 있던 한 학생과의 수업 시간입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에서 한 번도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고, 집에서 엄마와만 대화를 나누던 친구였습니다.
연극 활동 중 둘이 함께하는 협동 미션에서 그 팀만 성공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기쁨에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환호했고, 교실에 있던 친구들은 놀랐습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그 친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부모님과 담임교사, 친구들이 아이를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지금 학교에서 말하기가 어렵고, 중학교에 가서 해볼게. 나를 아무도 모르는 작은 중학교로 보내줘."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예술교육이 아이 안에 이미 존재하던 용기와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는 제가 가장 설레는 공간이며,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입니다.
[2단계: 나의 뿌리 - 과거와 계기]
Q3. 지금의 자리나 활동으로 이끈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작은 시작' 또는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러시아 모스크바 슈우킨 연극대학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 활동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치열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마음을 다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모습은 제게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사회에는 몸이 아파 생명을 잃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이 아파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의술로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예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결국 공감두의 철학인 '사람을 살리는 예술'로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저는 예술이 누군가의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을 다시 믿으며 살아갈 힘을 찾는 계기가 된다고 믿습니다.
Q4. 그동안의 활동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고비나 어려움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9년 공감두의 첫 공간을 마련했을 때였습니다. 오랜 꿈이었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하고, 남편과 함께 당근마켓을 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모았습니다. 선생님들과 처음으로 고사를 지내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입주한 지 몇 달 뒤, 장마철 폭우로 공간 전체가 물에 잠겼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합니다. 빗속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물건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정신없이 1층으로 옮기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암흑 같은 시간을 지나오게 한 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묵묵히 함께 걸어준 동료들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들은 말보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사회적기업 공감두예술교육센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동료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공감두가 있습니다.
[3단계: 나의 오늘 - 현재와 핵심 가치]
Q5.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3가지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스스로를 지키는 힘입니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삶을 쉽게 평가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그런 말들 앞에서 상처받고, 어느 날은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바람은 느끼되, 그 바람에 쓰러지지는 말라고. 바람은 지나가기 위해 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스스로 지킬 내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관계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도 사람입니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이해하고, 기다리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예술교육이 그 관계를 연습하고 회복하는 가장 좋은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세 번째는 지속적인 배움, 성장입니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꼰대가 되지 않는 가장 빠른 길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Q6. 현재 하고 계신 일과 활동 속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나 보람된 경험은 언제인가요?
제가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의 변화를 마주할 때입니다. 인간의 성장과 변화는 계단을 오르듯 한 단계씩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어떤 고민과 감정이 오가는지 우리는 모두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기다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아이들은 자기 등에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망설이던 모습을 뒤로한 채 하늘 위로 뛰어오릅니다. 저는 그 순간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교실에서 친구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 장애예술교육 공연 무대에서 용기를 내어 관객 앞에 서는 아이, 늘 뒤에만 있던 아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모습을 만날 때면 예술교육의 힘을 느낍니다. 저는 아이들의 변화가 피어날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 제공 : 공감두예술교육센터 천미현 대표>
[4단계: 나의 내일 - 미래와 지향점]
Q7. 지금으로부터 5년 혹은 10년 뒤, 꿈꾸는 모습과 사회적 역할은 어떤 형태인가요?
앞으로 공감두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을 넘어, 문화예술교육을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예비 문화예술교육가들이 공감두를 찾아와 현장의 경험과 철학을 배우고, 다시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공연장에서, 지역사회에서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관계를 회복하며, 함께 웃는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국민들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서로를 이해하며,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길에 공감두가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8. 훗날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내가 걷는 이 길을 통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추자도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문득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마이클 잭슨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텔레비전 속 배우들을 보며 연기를 시작했고, 그 길이 저를 러시아 유학과 연극,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제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굳이 바람이 있다면, 세상에 배고파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파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는 예술교육이 그 세상을 만드는 데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감사하고 최고의 삶이 될 것 같습니다.